예상치 못한 신예의 등장
솔직히 크리스 아펠한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누구지?' 싶었습니다. 픽사나 드림웍스 같은 대형 스튜디오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한 감독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2021년 넷플릭스에서 그의 작품 『위시드래곤』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오리건 출신의 백인 감독이 중국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는데, 막상 보니 단순한 '문화 차용'이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담아 만든 작품이더라고요. 넷플릭스가 왜 이 신예 감독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목차
애니 세계관: 동서양 융합의 시도
『위시드래곤』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세계관의 완성도였어요.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서양식 애니메이션 문법을 접목시켰거든요. 보통 이런 시도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아펠한스는 정말 자연스럽게 두 문화를 버무려냈습니다.
용 캐릭터 '롱'만 봐도 그래요.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름의 철학과 고민을 가진 복잡한 캐릭터로 만들어졌어요. 인간이었다가 용이 된 배경 설정도 흥미롭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변화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어서 어른이 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더라고요.
상하이라는 도시 배경도 정말 잘 활용했습니다. 고층 빌딩과 전통 골목이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이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핵심 주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과 도시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게 작위적이지 않다는 점이 좋았어요. 동양 문화를 서양식으로 포장하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 문화의 장점을 살려서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정체성: 타자의 시선과 문화의 거리
아펠한스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우려스러웠어요. '또 서양인이 동양 문화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외부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가능한 객관성이 있더라고요. 영화 속 주인공 딘이 겪는 갈등 - 자신이 원하는 삶과 가족의 기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사실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인 이야기잖아요. 아펠한스는 이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어요.
물론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전형적인 동양 스테레오타입에 의존하지 않고, 캐릭터들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했거든요.
감독 인터뷰를 보니 "이 이야기는 중국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에 관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도 그래요. 주인공은 단순히 '중국인 소년'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인간으로 그려져 있어요.
신화의 재해석: 롱 캐릭터와 전통 요소
롱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전통적인 동양의 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원래의 신성함은 유지하면서도 유머와 인간미를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켰거든요.
특히 롱의 과거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부와 명예를 쫓던 인간이었다가 용이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불교의 윤회나 업보 개념, 도교의 욕망 해탈 같은 동양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더라고요.
롱이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도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여정으로 그려져 있어요. 과거를 직면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간다는 메시지가 명확해요.
비주얼적으로도 정말 예뻐요. 롱의 움직임이나 색감에서 중국 전통 회화의 느낌이 나는데, 이게 너무 과하지 않게 적절히 조절되어 있어요. 배경 음악이나 색채 연출도 동양적 미감을 잘 살렸고요.
무엇보다 신화적 요소를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핵심 구조로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그냥 '동양적인 분위기'를 위해 용을 넣은 게 아니라, 용이라는 존재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구현했거든요.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꾼
크리스 아펠한스의 『위시드래곤』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런 식으로도 문화를 다룰 수 있구나'였어요. 자신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소재로 하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동시에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넷플릭스가 그를 선택한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문화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달해야 하는데, 아펠한스 같은 감독이야말로 그런 역할에 적합하거든요. 문화적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도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그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정말 기대됩니다. 이번에는 동양 문화를 다뤘지만,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도 그만의 시선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중요한 건 문화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이야기라는 걸 이미 증명했으니까요.